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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에서 “1년 동안 환자들과 함께 한 좌절과 환희의 순간

을 기록했다”며 “글에 대한 확신보다는 기억을 남기고 싶었

다. 앞으로도 삶을 기록하고 싶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대상에게는 상금 500만원과 상패가 주어졌으며, 한국산문을

통해 정식으로 등단하게 된다. 수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왔다. 초등학교 2학년의 예쁘장한 여자아이가 그런 위력을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진단은 Selective mutism. ‘선택적 함구증(緘口症)‘이라 부

르는 일종의 불안장애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아이들이

너무 불안한 나머지 낯선 환경이나 낯선 사람 앞에서 입을

닫아버리는 것이 이 병의 주 증상이다.

나의 전임 선생님도 몇 개월간 열심히 치료하셨지만 결국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듣지못하고 그만두셨다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와 함께 그 바통은 결국 나에게 넘겨졌다.

풋내기 소아 정신과 의사의 상황과는 관계없이 제주에 봄은

찾아왔다. 제주의 바람을 맞으며 왕 벚꽃 나무 길 아래를 걷

는 것은 너무나 낭만적이다. 가파도의 보리밭의 초록 내음은

가는 봄을 잡고 싶을 정도로 선명하고, 유채꽃 만발한 제주

도는 어떤 예술 작품보다도 뛰어나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제주는 남의 이야기 일 뿐 전임의 생

활은 고된 하루하루의 연속이다.

지도 교수님으로부터 선택적 함구증의 치료에 대한 지도를 받

고 최신 치료경향 등에 대해 공부한 뒤 그 아이를 처음 만나는

시간. 놀이치료실에 덩그러니 그 아이와 나만이 존재한다.

그 아이는 내 얼굴만 빤히 쳐다보고 있다.

결국 이야기를 시작한 건 나였다.

보통 아이들에게 인사하듯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나의 소개

를 간단히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물어본다. ‘이름이 뭐에요?’

물론 이 아이가 나의 질문에 한 번에 대답할거란 기대는 없었

다. 그런데 막상 대답을 안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를 보고, 적막을 깨뜨리기 위해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렇게 혼자 계속 말하기를 한 시간.

그러나 아이는 묵묵부답.

밀려오는 한숨과 함께 첫 시간 종료.

피곤하고 배고프다.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던 첫 만남을 시작으로

그 아이와의 소리 없는 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태양이 강렬하고 매미 소리가 병원을

가득 메운다. 누구나 여름이면 가고

싶은 제주도에서 살고 있지만 바쁜

전임의 생활은 내가 제주에 있다는

사실조차도 가끔 망각하게 한다.

날씨가 제법 더워지고 반팔 셔츠를 입기 시작할 무렵,

나의 전임의로서의 생활도 어느새 4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무척이나 더웠던 제주의 여름,

봄에 만났던 그 아이도 여름옷으로 갈아입었다.

시간이 지난 만큼 나와 그 아이도 서로에게 조금씩 익숙해

졌고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나는 그 아이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아이는 나에게 말을 하지는 않지만

종이위에 조금씩 자신의 생각을 펜으로 쓰기 시작했다.

항상 모래놀이만 혼자 하던 아이가, 나와 함께 그림도 그리

고 인형놀이도 하며 놀이의 종류도 다양해 졌다.

상당한 변화다.

지도 교수님도 처음 이런 아이를 만난 것 치고는 잘 버티고

있다며 나에게 약간의 신기함을 표현하심과 동시에 격려를

해주셨다. 그렇다. 그 아이를 만나는 게 나도 별로 힘들지

않다. 그 아이도 나와 함께 있는게 크게 긴장되지는 않는 것

같고 나랑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게다가 나는 아이가

말을 안 해서 답답하다는 느낌이 없어진지는 오래됐고 자연

스럽게 혼자 말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그리고 아이의 변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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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The Best Care”

상반기

문 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