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ous Page  15 / 40 Next Page
Information
Show Menu
Previous Page 15 / 40 Next Page
Page Background

대학 체계는 우리와 많이 달랐다. 인사권을 포함한 거의 모든 권한이 주임교수에게 있었고 거의 종신직인 것 같았다.

학교에서의 역할은 의전원생을 교육하는 것이었지만 자체적으로 fund를 따서 그 예산으로 실험장비와 행정 및 실험 인력을 충원

하고있었다. 그러다보니연구비를따지못하게되면교수를제외한나머지직원은해고가되었다. 이사람들은항상자기가 해고

될 때를 대비해서 두 번째 직업을 무엇으로 할지를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교수는 테뉴어를 받은 몇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연구 교수 였고 그 밑에

post-doc이 주로 실험을 하고 있었다. 이들의 삶은 정말 힘들었다. 특

히 한국인과 중국인이 이곳에 오면 결과물을 남기기 위해 아침부터 새벽

1-2시까지 실험에 매달렸다. 그리고 교수들은 연구비를 따기 위해 눈코뜰

새 없이 연구계획서를 새로 만들고 연구 방법을 알기위해 같은 실험실에 있

는 다른 교수들과 계속 만나서 그것에 대한 토론을 하였다. 그들에게도 물론

휴식을 위한 일탈은 있었지만 어디 갔나 싶으면 이내 연구실에서 연구계획서에

넣을 그래프와 그림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볼 때 정말 쉽지 않은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 결과적으로는 모두 경쟁

자였지만 그 사이에서도 동료애와 우정은 있었다.

내가주로한실험은 쥐 대장의 전기 생리학적 실험으로 그 과정은 단순했다.

먼저 쥐를 잡아 대장을 적출하고 점막을 벗긴 다음 근육으로 실험했는데

membrane potential을 측정하는 실험과 대장 근육의 수축을 보는 실험 2가지를 진행했다. 기초 실험실인지라 처음에 몰농도

구하는 것 등 무기화학적인 것을 새로 공부하느라 바빴고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생리학 실험이기에 산소의 사용과 생리학적 buffer인 kreb의 사용은 필수였다. 한 동안 산소통을 교체해보다 보니 그것도 전

문가가 된듯한 착각에 빠진다. 실험에서 knowhow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달았다. 다들 이렇게저렇게 하면 된

다고 말은 해도 그 말만 듣고는 도저히 실험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내가 그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름대로 trial and error

를 통해 체득 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한두 달을 아무 성과 없이 어떻게 실험하는지에 매달려 방법만 연마했는데 어느 날부터

sharp electrode를 세포에 꽂는 것이 비교적 예측가능하게 되었고 알맞은 시약의 농도와 incubation time도 나름 결정할 수

있었다.

하나에 익숙해지면 또 다른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연구 data를 기록으로만 남기다가 그래프를 정량적으로

읽어서 비교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아주 한참 지난 후였다. 그때부터 그래프를 수치로 읽어내는 과정은 나를 답답하게

했다. 오히려 그래프를 그림으로 만드는 작업이 평소 내가 하던 작업과 비슷해서 더 쉬웠다. 그렇지만 익숙하지 않은 것은

모두 다 어려운 법. 사실 처음에는 내가 그 그래프를 읽고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모두 그림으로 만들어서 매일같

이 보고서를 썼지만 그들은 그것이 중요한 것 같지 않았다. 결국 정량적인 data가 필요했던 것이다. 늦었지만 결국 깨닫고

왔다. 그리고 귀국을 준비할 때 쯤 나는 더 많은 실험을 하고 있었다.

리노의 하늘은 정말 파랗다. 그리고 하늘의 구름은 예술 작품 같다. 많은 사람들이 구름을 연구하러 리노로 온다고 한다. 아직

도 그 하늘이 눈앞에 선하다. 그런데 겨울이 되면 달라진다. 모진 바람과 눈, 그 바람은 거의 폭풍과 같다. 고도 1500m의 고

산지역이고 바로 옆에 Sierra-nevada산맥이 있어 더 그렇다. 겨울에는 맑은날 보다는 흐린 날이 더 많은 것 같았다.

파란 하늘을 보면서 실험을 때려치우고 당장 나가서 고속도로를 달리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꼈다. 그리고 사막 지역이라 겨울

을 제외한 계절에는 빨래를 널어놓으면 4시간 정도면 그냥 말라버렸다. 사막에 물만 제대로 공급되면 살기에 정말 쾌적하다

는 것을 체험했다. 그렇다고 누구하나 가습기를 틀고 사는 사람은 없었고 나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연수는 끝났다. 나는 지금도 내 자신에게 묻는다. 그 동안 무슨 변화가 있었냐고. 나도 잘 모르겠다. 오랫동안 병원에서

살아온 그 습성대로 똑같이 그것을 반복하며 살았던 것은 아닌지 오늘도 반성한다. 그리고 자판을 두드리며 옆을 둘러보면

비로소 여기가 제주도고 내 병원임을 깨닫는다. 지금와서 생각하지만 나는 그 동안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15

2014 “The Best Care”

상반기

해 외 연 수